마음이 행복한 낚시 / 2008년 10월 18일(토)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 도현 詩 가을 엽서
(Photograph by 슬유)
올해는 유난히 비소식이 뜸하다.
가을 하늘의 높고 청명함과는 달리 낮아져 가는 수위 때문에 낚시꾼의 얼굴에 愁心이 가득하다.
경남권 저수지의 대부분이 이미 가뭄에 바닥을 보였거나, 그 직전인 상황이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대물낚시의 황금시즌인 가을인들, 마냥 반갑고 즐겁기야 하겠는가?
어디~ 찌 세울만한 곳이 없을까?
이왕지사 욕심을 부려 계곡지면 더욱 좋겠다.
7년전, 눈물겨운 우중출조의 아련한 추억이 깃 든 곳..
낭만 그리고 슬유, 산을 오르다.
(2008.10.18(토). 오후 1시 30분 경)
오늘은 조금 일찍 서두른다.
행여 목적지의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칠북 소류지로 가리라..
미리 생각 해 두었기 때문이다.
먼저 도착해 계신 슬유님과의 눈인사도 잠시,
뼈다귀 해장국을 한그릇씩 후딱 해 치웠다.
도심에 인접해 있다 보니,
도로를 사이에 두고
회색과 푸르름이 교차하는 요상한 광경이 연출되는 곳..
(Photograph by 슬유)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가을 하늘을 향해 도로를 건너고 밭도 지나 언덕을 힘차게 오른다.
한발, 두발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심장이 콩닥콩닥~ 설레임으로 충만해 온다.
이윽고 제방에 다 다르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가을만 되면 우수수 떨어지는 오동잎 마냥, 미풍에 잠시 중심을 잃고 현기증이 났다.
정신을 차리자, 이번에는 은빛 찬란하게 일렁이던 물비늘이 비린내를 풍기며 콧등을 간지럽힌다.
(Photograph by 슬유)
마치 낡은 일기장 한 켠에 끼워져 있던 책갈피 마냥, 기억속 빛 바랜 추억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행히 낚시 동무도 물색이며 여건이 꽤나 맘에 드는 모양이다.
무너미를 건너 좌안, 상류 그리고 우안을 차례로 둘러 본다.
(Photograph by 낭만)
빨강, 노랑, 파랑 등 형형색색 가을빛으로 물든 낙엽을 바스락 바스락 밟으며 걷고 있자니..
오색 찬란한 가을의 향기가 참 눈물겹게 낭만스럽다.
(Photograph by 낭만)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내 디딜 때 마다 발가락 부터 머리카락 끄트머리 까지 전해져 오는 짜릿한 전율,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이 광경을..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밤이 되자 해 지는 풀숲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 소리..
제방 넘어 팡파레를 울리며 까만 밤 하늘을 오색 찬란한 빛으로 수 놓는 불꽃 향연에 이미 五感은 흥분의 도가니..
하지만 밤이 깊을수록 기대는 침묵으로 변하고, 까만 소류지에 내려 앉은 8개의 찌불은 미동조차 없다.
(Photograph by 낭만)
그렇게 눈꺼풀이 내려 앉을 즈음..
안개처럼 희미하게 빛을 잃던 별무리의 중심에서 하나의 찌불이 힘차게 솟구쳐 오른다.
달빛을 가르며 요동치는 낚시대의 울림, 물 속 생명체의 저항이 만만찮다.
설마 밑걸림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에 낚시대에서 힘을 빼는 찰나, 피이잉~ 순식간에 찌불이 물속으로 잠긴다.
(Photograph by 낭만)
으라차차~
다시금 대를 세우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맛을 만끽 해 본다.
몸부림 치며 거세게 저항하던 녀석도 이제는 순순히 끌려 나오는가 싶더니, 기다란 꼬리를 배배꼬으며 휘어감는게 아닌가...
하마터면 깜짝 놀라 까무라칠 뻔 했다.
수년 전 바닷가 소류지에서 낚아 본 경험이 있던터라 민물 장어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바늘 빼기가 난감한 상황, 결국 슬유님의 도움을 받고서야 한바탕 소동이 일단락 되었다.
또 다시 고요한 적막속으로 빠져든다.
허공에다 내 뿜는 내 숨소리만이 침묵을 깰 뿐이다.
나는 이런 깊은 고요함이 좋다.
오로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 가을바람에 낙엽 떨어지는 소리, 밤새 재잘대던 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이르기까지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만난다.
無名山 깊은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골바람에 솔향이 잔뜩 묻어 있다.
오직 계곡지에서 느낄 수 있는 상큼함..
꼬르륵~
짧은 명상도 잠시, 허기진 배 속에서 신호음이 들린다.
다시 제방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고
도심속으로 질주..
몇년전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황무지에,
어느새 인파가 붐비는 음식점이 즐비해 있다.
물론 진례에 차려진 캠핑 음식에 비할 바 있겠느냐 만은..
나름 맛깔스럽게 익어가는 삼겹살과 소주 한병이 있으니,
나는 세상 부러울게 없는 왕이나 진배없다.
이어.. 권커니 자커니..
그렇게 음식점을 나와 도로를 건너고
자연속으로 질주..
(Photograph by 낭만)
밤이슬이 촉촉히 내려 앉은 보금자리에 몸을 뉘이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 앉는다.
십년, 아니 이십년 후의 내 모습도 상상해 본다.
"그는 은퇴 후 낙향하여 유유자적의 생애를 보내고 있으리라.."
어쩌면 이런 상상이 자깝스런 망상일지도 모를 일이다.
밤낮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심한 일교차 때문에 한기가 느껴질 때 쯤..
두번째 입질..
그리고 황금비늘을 가진 7치급 붕어..
하지만 저 멀리 상류지대에 앉은 내 낚시 동무는 조용하다.
아니 적막하다.
간간히 들려오는 달빛을 가르는 낚시대의 울림 뿐..
어느새 무거워진 눈꺼풀은 완전히 내려 앉아 문을 닫았다.
꼬끼오~ 꼬꼬~
꼬꼬댁~ 꼬꼬~
마당을 나온 암탉 울음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밤새 가을의 전설을 꿈꾸던 낚시 동무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수확의 계절 가을,
콩이 아주 탐스럽게 잘 컷고 감도 大豐이다.
올해는 태풍도 없었고 장마도 심하지 않아 잘된듯 하다.
다만 과하게 뜸한 비 소식에 겨울나기가 걱정이다.
下 山
낭만 그리고 슬유, 산을 내려오다.
(2008.10.19(일). 오전 8시 30분 경)
고작 하룻밤이지만 짐은 한 보따리다.
양쪽 어깨에 둘러 메고 두손 가득 움켜 쥐고서, 또 다시 도심속으로 질주..
방울방울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이 발등을 적시고 상쾌한 물안개가 온 몸을 휘어감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마음이 행복한 낚시?
취하는 것이 아닌 비우는 낚시..
비록 오늘은 비어 있지만 내일은 채울 수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은 아닐지..
끝으로 함께 해 주신 낚시동무님, 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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