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Forclara입니다.
작년, 상품에 눈이 멀어 월간낚시 독자투고란에 보냈던 겁니다.
졸작이지만 읽어보세요.
제목 : 오늘도 나는 그녀의 꿈을 꾼다.
요즘은 왠지 피곤하기만 하다. 몸이 무겁고 머리도 맑지 못하다. 현장연구보고서 제출 마감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데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짜깁기하는 것은 2, 3일이면 후딱 해치울 수가 있었는데, 이번 것은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도 않고 고민뿐이다. 소위 남들이 말하는 40고개를 넘기고부터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러다가는 얼마 못가 마누라 눈치 보며 산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 같다. 그 때는 비가(悲歌)를 불러야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면서, 지난 토요일 대박이 터질 것 같은 예감과는 달리 갑작스런 이상기후로 인하여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철수를 했던 그 수로를 다시 찾을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섰다. 집사람은 나의 낚시 행각에 손을 든 지가 오래되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과 공휴일은 물가에서 보낼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꽝’이 다반사지만 그래도 보고서는 또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경상도 남자들이 집에 와서 하는 말 3가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아는? 두 번째는 밥 묵자! 세 번째는 자자! 이다. 새삼스럽게 이 말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바로 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설마? 또는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데…, 이렇게들 말씀을 하겠지만 필자는 아직까지 간(?)이 크게도 이렇게 버티고 있다. 이런 내가 오늘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서며 할 말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문 잘 잠그고 자!’ 라는 말 한마디밖에 없다. 간혹, “늙어서 구박받지 않으려면 젊은 지금 잘하라”는 협박을 받기도 하지만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는 흘리면 그만이다. 설마 하늘같은 남편을 쫒아내기야 할까…. 혹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부러운 사람이 있으면 연락하시라. 비법을 전수할 용의도 있다.
아침에 낚시 가방을 차에 실어 두었기 때문에 집에 들를 필요가 없었지만 마누라 눈치도 볼 겸해서 남의 집 방문하듯 잠시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옷을 겹겹이 둘러 걸치고 집을 나선다.(밤에 추우니까.) 이 때, 우리 집사람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아이들은 “아빠! 또 붕어 잡으러 가세요? 제발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지만 이 말도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 더런 놈의 애비다.
집을 나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조금 달리니 핸드폰이 부르르 뜬다. 나의 낚시 친구가 오랜만에 악양수로로 가자고 한다. 오랫동안 비다 태풍이다 해서 가보지 못했던 터라 그러기로 했다. 중간에서 저녁거리로 빵과 우유를 사서 가방에 쑤셔 넣고 악양수로에 도착해 보니 물 사정이 좋지 못하다. 참 기가 막히는 일이다. 벌써 몇 달째 인가! 할 수 없이 의령에 있는 석교천으로 가기로 목표를 수정했지만 중간에서 **수로에 눌러앉고 말았다.
좁은 풀밭 사이, 비포장 길을 따라 50여 미터 들어가 차를 세우니 동네사람인지 낚싯대를 거두고 철수를 한다. 낚시가 잘 됩니까? 라고 공손히 물어도 대답이 없다. 아니 저 사람은 입이 없나? 귀가 모자라나? 남의 말을 이렇게 무시하다니…. 그러나 퍼뜩 정신이 들면서 내가 지독히 멍청하다는 생각이 든다. 낚시가 잘된다면 왜 철수할까…. 혹시 싶어 가까이 다가가 그 사람의 낚싯대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1년 동안 앉아 있어도 ‘꽝’을 면치 못할 채비다. 통대나무로 만든 막장대에 저급의 찌가 달렸는데 찌톱도 없다. 거기다 쌍바늘에 지렁이도 비쩍 마른 것이 맛도 없어 보인다. 봉돌도 찌의 부력보다 무거운 것 같고. 그렇다고 입질이 없을까 마는 요즘의 붕어가 뭐 그렇게 순진하지만 않다는 것을 진작부터 느껴오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런 채비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우습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너무 세속에 물든 탓인지 모르겠다.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망설임도 없이 남이 무수히도 많이 앉아 반질하게 윤이 나는 자리에 낚싯대를 펴기로 했다. 낚싯대 펴는 솜씨는 가히 무협지에 나오는 절세무공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를 능가한다.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시간이면 낚싯대 편성과 주변 정리까지 말끔하게 마친 상태가 되고, 눈은 주변 사람의 찌 놀림까지도 파악하고 있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게 하루 이틀 한다고 터득되는 솜씨가 아니다. 공부를 이만큼 했으면 우리 아버지가 바라던 사람이 되고도 남았을 것 같다.
하여간 몇 번의 떡밥을 던진 후 조용히 앉아 기다리자 미동도 하지 않던 찌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쑤욱∼’ 솟아오른다. 이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이었던가! 달빛에 차디찬 빛을 발하던 칼날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두 동강 내던 그 솜씨로 재빠르게 챔질을 했다. ‘핑∼’하는 소리와 함께 낚싯대 끝이 휘어지고 그녀와 한바탕 몸싸움(?)을 해야 하지만 낚싯대 끝이 허공을 가르고 만다. 낚싯줄의 끝에 낚시 바늘보다 조금 큰 피라미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오냐! 피라미가 있어야 붕어도 있지. 이렇게 위안을 하며 온갖 진을 펼쳐 나가지만 그녀는 소풍을 갔는지 기별이 없고, 낚시 바늘보다 조금 더 큰 피라미만 열심히 떡밥을 물고 늘어진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던가? 자리를 옮길 마음이 있느냐? 는 친구의 물음에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하고서는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에는 그녀의 마음도 설레리라 믿으며.
나에게도 조금은 양심이 있다. 주말마다 외박(?)을 하면서 차마 도시락까지 싸 달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 스스로 빵 2개와 우유 한 개를 준비한다. 이것이 나의 단출한 저녁거리다. 저녁거리를 차려놓았지만 혹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까하여 조바심을 낸다. 가능하면 움직이는 동작도 줄인다. 거의,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그저 눈은 찌에 고정시키고, 손은 빵과 우유를 들고 퍼 넣는 수준인 것이다. 그렇게 잠시 처량한 시간을 보내자 태양이 서산을 넘어간다. 노을이 아름답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시인이라면 노을 찬가를 읊고, 내가 화가라면 저 노을의 아름다운 색깔을 화폭에 담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우니 ‘나 하늘로 올라가 저녁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노을의 꼬리가 자취를 감추기 전, 반딧불 빛을 닮은 야간용 케미(Chemilight)를 꺾어 주간 케미와 바꾸어 달았다. 잠시 후, 그녀의 입놀림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품위가 있는 것이다. 아마, 세련되고 화려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조그맣게 잘라 빨갛게 바른 루즈가 음식에 닿을 새라 살짝 벌린 입으로 조심스럽게 넣는 그 모습이랄까…. 그렇게 그녀도 음식을 입에 물고 천천히 그리고 높이도 솟아오른다. 어이구! 예쁜 것!
오래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 ***박사가 나와 채식이 어떻고, 엔돌핀이 어떻고 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그녀의 저녁 먹는 모습에 나의 그 엔돌핀이 팍팍 솟아나고 있다.
5∼6마리를 연거푸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찌는 말뚝이다. 이럴 때는 슬며시 기분도 우쭐해진다.
갑자기 바람이 이상하다. 재갈공명이 일으키는 바람인지 동풍이 분다. 저 멀리서는 비가 오는지 갑자기 번개도 번쩍인다. 잠시 후, 이제 그만 가보라는 가랑빈지, 조금 더 있으라는 이슬빈지 오락가락하고 바람도 쌀쌀해져 간다. 조금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별만은 초롱초롱하다. 흡사 우리 집 막내의 눈동자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저 넓고 깊은 호수에 반딧불이 조용히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릴 때 보던 그 까만 하늘과 별들이다.
조바심과 안타까움 속에 찌 올림도 현저히 변화를 보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찌톱이 전부 물 밖으로 솟아올랐지만 이제는 가끔 오는 어신이 1∼2마디로 솟는 폭이 현저히 줄었다. 거짓말을 조금 더하면 망원경을 준비해야 할 정도로 예감이 좋지 않다. 언제나 예감은 적중하는 것일까?
철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두어 시간, 내가 사랑하는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열심히 떡밥을 던졌지만 이제는 조금의 미동도 없다. 이럴 때는 작전상 후퇴가 최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또 다음날을 기약하자.
이놈의 병에는 치료약이 없다. 내가 10살도 안된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낚시를 다니다 주위 어른들께 핀잔과 꾸중을 무척이나 많이도 들었지만 아직까지 고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병만 깊어가고 있다. 또 천상병 시인을 팔아먹어야겠다. ‘나 하늘로 돌아가 말하리라. 그녀를 유혹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다고.’
하늘을 바라보니 싸늘하게 부는 바람사이로 초록별이 빛난다. 코스모스의 한들거림을 뒤로하고 달리는 차창에는 그녀와의 만남을 기뻐하는 콧노래가 부딪친다.
그리고, 벌써 다음 만남을 생각하며 울렁이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이상입니다.
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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