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밑에서 빌빌대며 곱게 있지 못하는 내 성질로도 한동안 잘 견디다가
제풀에 거품을 물고 뒤로 자빠진 후 참담한 자괴감으로 힘겹게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에
문득 봄내음 봄숨결 느껴보고 싶어서 무작정 달구지 색시 허리를 타고 길을 나섰다.
늘 가던 길이라 도로변의 풍경을 무신경하게 바라보며 달리던 중,
임곡삼거리에서 반성으로 꺽인 길로 들어서니 길가 벚꽃나무가 세찬 계절풍에
처절한 단말마를 지르며 낙화하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에 부딪치는 벚꽃이파리들에서 별안간 봄기운을 느끼며 비로소 멍울진 내 마음의 오감도가 편안해졌다.
이윽고 양촌온천을 지나자마자 좌측에 있는 일암마을의 못으로 가보았다.
크기가 아담한 소류지를 보기만해도 괜시리 마음이 설레어 대를 펼칠 준비를 하는데
완장을 두른 노인장 한분이 내게 다가와서 하는 말이 "작년에 물 빼서 괴가가 없데예."...
그 영감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었지만,나는 무덤덤한 심정으로 다시 대를 접었다.
근처 대방마을 뒤에 있을 용내무재못으로 가려다 일전에 비실재를 힘겹게 오른 기억이 떠올라
짧은 망설임 끝에 반성 가산소류지로 가기로 하고 일암못을 뒤로해서 미련없이 떠났다.
전에 한번 와본 길이라도 길치라서 한참 헤맨 후에 소류지에 도착했다.그런데 작년 가을에 없던 수중수초더미가 급격히 늘어서 대를 담그려니 적잖이 애를 먹었다.
특히 바닥수초때문에 찌를 제대로 세우기 어려워서 또 갈등이 일었다.
게다가 점심을 빼먹어서인지 이놈의 배가 도통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었다.
일단 반성 시장의 국밥집으로 가서 끼니를 해결하면서 다른 저수지를 물색해보기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지려고 하니 마음이 급해짐을 스스로 달래보면서 국밥을 먹던 중, 일감에 떠오른 저수지가 상촌지였다.
왜 상촌지였는지 지금도 모른다.
뭣에 흘렸는지 몰라도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거기로 갔다.몇번 와본 곳이긴 하지만,재미를 본 적이 없고 산간소류지를 주로 즐기는 내 타입에 맞지는 않아 가는 중에도 핸들을 꺽으려는 적이 한두번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용케 거기까지 갔다.
넓은 수면적을 보면 볼수록 외려 마음이 갑갑해지지만,해는 이미 졌기 때문에 그냥 마음을 비우고
최상류 마을앞 빨래터 옆에서 자리를 잡았다.
군데군데 여전히 보이는 비양심의 흔적들...동리사람들에게 괜시리 얼굴을 못드는...
늘 그렇듯이 2.6대와 2.4대를 펼쳐보니 역시 여기도 바닥수초가 있는 게 예외가 아니었다.
난감했지만 꾸준히 바닥수초의 공간을 찾아보니 두군데가 있어서 거기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별로 즐겨하지 않는 떡밥낚시로 포인트를 만들어가면서 계속 헛챔질을 했다.
30분쯤 경과됐을까? 드디어 첫입질...
내심 흐뭇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본능적인 챔질에 들어간 순간, 예의 물밑수초에 감기는 것이 아닌가?
짧은 당혹감 뒤에 강제집행을 시도해보니 5치붕어가 수초수염을 한 채로 끌어올렸다.
느긋한 맘으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데 한가지 허전감이 들었다.
역시 술이었다.
가는 길에 술을 일부러 사지 않았던 이유는 낚시상황이 좋지 않을 때 바로 집으로 철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물밑상태가 안 좋고 게다가 봄밤기운이 제법 차가웠음에도 불구하고 밤낚을 감행하기로 하고
다시 반성읍내로 들어가 쇠주 2병만 사갖고 돌아왔다.
이미 꽂아둔 물위의 반딧불이를 바라보며 안주없이 마시는 술맛은 그 누구도 모른다.
아주 천천히 한모금 빨고 떡밥을 달아 다시 투척해놓고 또 다시 술병을 드는데
수중발레의 그것처럼 화려한 올림으로 입질이 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늘 보아도 너무 정겨운 찌추임새!
술병을 든 채로 챔질을 하니 생각외로 제법 앙탈진 저항을 느끼니 그게 천하일미의 안주감이 아니더뇨?
게다가 물밑수초더미를 가까스로 피하면서 들어올릴 때 손맛가뭄은 완전 해갈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 역시 여기에 잘 왔다는 뿌듯한 안도감마저 안주로 하면서 술을 달게 마시니 세상만사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수심과 어심만 보이는 봄밤이었다.
조과가 어땠는지를 묻지 말아주십시오.
제 가난한 손바닥에 뭇여인의 속살보다 더 고운 물비린내를 묻히는 것만 해도 마음이 부자입니다.
다만 돌아올 때 비양심을 줍고 오시는 양심적인 귀하에게 살림망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오셔서 언제든지 얼마든지 보십시오.
술 안묵고 글을 써보는 것은 근래에 아주 드문 일인지라 내가 수없이 눈을 비비고 저 우중출조넘을 괄목상대맨치로 보고 또 보는 이 우중출조넘을 열씨미 말리는 우중출조이었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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