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만땅
미친 남편 쓰게 된 계기가 된 글 칠호 십매론 (七好十昧論)
내가 처음 낚시를 시작한 때가 언제쯤인지는 꼬집어 얘기할 수가 없다.
아른아른한 기억으로는 괴춤에 걸친 것도 없이 부지깽이 같은 낚싯대를 들쳐 메고 고향인 갯마을 돌짬을 고샅 달리듯
구석구석 후비고 다녔던 시절이 생각 키울 뿐이다.
너댓살쯤으로 어림하면 나의 조력(釣歷)은 어언 50년이나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낚시 경력이 오래면 뭘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많이 쏘다녔으면 대수랴.
전통 자랑하는 낚시춘추에 하다못해 숨겨놓은 ‘포인트’를 소개하는 글이라도 써봤으면 하고 맘먹은 지가 오랜데도
뭣 한 줄 딱 분질러서 쓸 글도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 몇 년 몇 달을 뭉그적거려야 했다.
이는 말솜씨조차 어눌해 항상 '언거번거타'는 핀잔을 주위로부터 자주 들어온 데다,
옹춘마니처럼 한 내가 창간호부터 이즘까지 낚시춘추를 펼칠 때마다 면면을 통해 푹 고아진 내용하며,
알알이 박힌 주옥같은 글 솜씨들에 주눅이 들어온 터-.
내 아무리 낑낑대며 열심히 쓴다고 써 봤자 못난 글 솜씨, 얕은 실력만 자드락나기 십상.
뒤넘스럽다는 손가락 총이 두려운 때문이었다.
그러나 낚시인생 50년,
신문사 '사건기자와 낚시'라는 두 기어는 아무리 끼워 맞춰도 맞물릴 수 없었고,
영하 10도 이하의 혹한 속 무인도에서 집채 같은 파도를 뒤집어 쓴 채 얼마나 아래,위턱을 마주쳤으면
몇 날 동안 잇몸이 다 우리- 했을까.
급류에 떠내려가는 중학생을 구해 주고도 언걸먹었던 일이며,
‘올해는 회사 경영상 휴가 보너스가 없는갑다’ 는 너스레를 남기고 전남 태도까지 5박6일 돌돔낚시를 다녀온 후
살천스런 마누라 모습을 못 본 체 언구럭 거렷다가 쫓겨날 뻔했던 사연들-.
내 일찍이 공부라도 좀 열심히 해둬 글 솜씨 말솜씨를 자주 숫돌에 얹을 수 있었더라면
낚시에 관한 한 보고 듣고 한 얘기만으로 몇 날 밤을 지새워도 듣는 이가 지루하지 않을 것 같고,
볼펜으로 몇 타스씩 바꿔 써도 못 다할 것 같다.
그러나 낚시꾼이 낚시에 관한 글을 써 본다는 게, 그것도 첨단 지성들이 머리를 짜 만들어 내
고,국내 유수의 낚시 원로들이 집필에 참여하는 낚시춘추에 실어 본다는 게 얼마나 오달진 일일까.
짐짓 뜨악해 하면서도 오래 전부터 기회를 엿봐온 마음이 켜켜 해진 것도 사실이 아녔을까.
기왕 연필 든 김에 누가 뭐래도 아는 체 잘난 체 무슨 낚시 철학이라도 터득한 체 한 마디 해보자.
낚시를 갈 때나 다녀오는 길에 제일 많이 듣는 얘기가 '재미 좀 봤능교'다.
낚시에 취미를 붙이기가 어렵더라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복쟁이 새끼 같은 것만 물리면 신경질이 나서…',
'피라미 몇 마리는 하도 감질나서…' 한다.
이는 낚시의 묘미를 '많이', 또 '큰 것' 낚는 일 한 가지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최소한 낚시가 좋은 점 7가지와, 10가지 재미를 얘기하고 싶다.
일컬어 '7호 10매(七好 十昧)'.
아니 마음먹기 따라서는 스무 가지 서른 가지도 넘는 좋은 점과 흠뻑 빠질 수 있는 재미가 있다고 나 할지.
낚시는 안 좋은 점까지도 좋은 것.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그래서 7호(七好)-.
그 하나가 못 낚아도 좋고, 낚으면 더욱 좋고, 많이 낚으면 더더욱 좋은 것.
다음은 피라미, 복 쟁이 라도 좋고, 도미나 월척붕어 등 듬직한 고기면 더욱 좋다.
혼자 앉았어도 좋고 옴살 한 친구와 함께 면 더욱 좋은 것.
낚시터나 낚시버스 안에서 마음 맞는 낚시인이나 풋풋한 아가씨라도 사귈 수 있으면 더더욱 좋다.
아무리 버성기는 사이라도 낚시를 함께 하다 보면 백년지기 되기가 십상이고,
낚시를 아는 여인과 함께라면 세월 가는 줄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아가씨와 함께 했던 경우 마누라에게 자드락나는 바람에 지은 죄도 없이 몇 번이나 옴씰옴씰했던 찝찔한 기억도 지니고 있다.
출조는 비오고 눈 내리는 험상궂은 날이라도 좋고 화창코 신선한 날이면 더욱 좋다.
물 색깔이 뿌옇게 변해버린 낙동강 가에 앉아도 좋고, 산자수명한 충주호 명경지수를 대하고 앉으면 더욱 좋다.
이는 낚시를 드리울 수만 있으면 된다는 안도감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낚시꾼이어야 한다는 뜻.
마음이 울적할 때 훌쩍 떠나도 좋고 상큼한 기분이면 더욱 좋다. 주머니는 비었어도 좋고 두둑하면 더욱 좋은 것.
낚시는 옴니암니를 셈하다 보면 꾀죄죄한 월급장이 형편으로는 평생 엄두조차 못 낼 수도 있는 것.
형편에 맞춰 보리밥알 미끼로 구포(龜浦)다리 밑에 쭈그리고 앉아도 된다. 토큰 2개만 있으면 족하리라.
흔히들 낚시는 낚는 재미, 먹는 재미라고들 한다.
그러나 낚시라면 고생스런 것도 재미, 신경 쓰이는 것,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 모두가 재미다.
그래서 나는 줄여 잡아도 10가지 흠뻑 빠질 수 있는 재미를 만끽해 왔다.
나름대로 '10매경(十昧境)'이랄까.
낚시를 두고 제일 큰, 또 맨 첫 걱정거리라면 미끼다.
미끼가 있어야 낚시를 할 수 있고 살찌고 싱싱한 미끼 야 말로 조황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끼를 준비하는 재미가 첫째다.
요즘에야 돈만 있으면 별별 미끼도 다 살 수 있고, 문 밖 몇 발짝만 나서도 낚시점이 있으니 걱정할 일이 못된다.
그러나 30여 년 전만 해도 갯바닥을 뒤져 참 지렁이와 갯지렁이를 손수 잡아야 미끼를 준비할 수 있었다.
민물용 떡밥도 마찬가지, 늘보리, 찐 깻묵가루를 빻고, 원기소, 천궁, 땅콩 가루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손수 배합해야 했다.
잉어를 노릴때는 깻묵과 번데기 가루를 더 넣어야 했고, 콩가루가 많으면 피라미 시달림을 받아야 했던 경험….
이런 경험들이 포개져 숟가락 잡은 손을 떨리게 했던 기억은 반추할수록 고욤하다.
다음으로 잡은 미끼를 살리는 재미 또한 수월찮이 크다.
지금은 냉장고가 있어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예전엔 온 집안에서 제일 서늘한 마루 밑 주춧돌 뒤에
지렁이 통을 걸어두고 때 맞춰 물을 뿌려주고 지렁이 운동도 시켜야 했다.
낚시채비를 꾸미는 재미는 아기자기하고 으밀아밀 한데 있다.
남달리 섬세한 채비를 즐겼던 나로서는 될수록 목줄은 가늘고 길게 썼고, 봉돌은 작을수록 좋아 녹두 봉을 고집했다.
다른 꾼 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언구럭 질은 ‘스릴’마저 느끼게 한다.
낚시채비를 준비하는 중 백미는 낚싯대 만들기-.
지금은 ‘카본’, ‘보론’, ‘세라믹’ 등 첨단 소재로 만든 낚싯대가 많지만 당시 만해도 통 대나무가 유일한 것.
감성돔용 낚시 대의 구비 조건은 길고 가늘면서 휨새가 강한 것으로서 전국에서도 해남 산죽(海南 山竹)이 으뜸이었다.
많은 경비를 들여 경상도에서 전라도까지 산죽(산에서 자란 대나무) 을 구해 와야 했고,
대나무에 세칭 ‘야끼’(열처리) 넣는 장인으로 소문난 쇠 돌이 영감을 꼬득여야 했다.
푸짐한 술, 안주를 며칠씩 대접해야 짬을 내줬고, 짚불을 피워놓고 대나무를 구워 젖은 수건으로 뭉긋한 대를
곧게 펴고 식히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 후 곧바로 편편한 곳에 놓고 돌을 눌러 굳혀야 했다.
나는 부친이 장으로 계시던 관공서 국기게양대에 대나무를 거꾸로 매다는 아이디어를 개발,
성능 좋은 낚싯대를 가질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해질 무렵 게양대에서 국기가 내려지면 나는 당시 소사로 일하던 '사이상'을 구슬러 가느다란 대나무 끝에
주먹만 한 돌을 달아 국기 대신 낚싯대를 게양하길 1개월 여.
서리라도 맞히고 나면 대는 강철처럼 빳빳해졌고, 그 대를 메고 나설 때마다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또 알찐 재미 한 가지는 칼 가는 재미다.
6.25 부산물인 뭉뚱한 미제 군용 과일칼. 청석 숫돌에 쓱쓱 벼리는 재미….
날을 세우면 면도가 가능했고 그 칼로 회를 뜨면 맛은 배가 됐다.
고되면서도 보람 있는 재미는 밑밥을 뿌리기 위한 쓰레질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부근에 있던 물밑 고기들이 와글와글 모여들어 입을 쩍쩍 벌리고 미끼가 내려오길 기다리는 것 같은
착각, 아니 환상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고된 줄을 모른다.
깐죽대는 찌 놀림을 읽어야 하고 맥낚을 드리울 경우 고기가 꼬리치며 지나가는 감각도 대를 잡은 손에 붙들어야 한다.
이른바 고기를 물리는 재미다.
이 재미 속에는 물고기와 인간의 대화를 곁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물리는 재미 뒤에 바로 와 닿는 재미가 낚는 재미다.
이 재미야말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물리는 재미가 고기와의 두뇌 싸움, 여성적인 재미라면,
낚는 재미는 남성적인 재미요 체력 싸움이자 심장을 단련시키는 가장 좋은 ‘스포츠’다.
돌돔이나 감성돔, 월척붕어를 걸었을 땐 챔질 순간에 뒤 꼭뒤의 피가 “싹” 하고 가시면서 순간적으로 심장이 멎는다.
이때의 심장 멈춤이야말로 온갖 시름도, 쌓인 ‘스트레스’도 깡그리 걷어가 버린다.
이 때문에‘낚시 광증은 편작도 못 고친다’고 했던가-.
다음은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재미다.
이 재미가 없다면 낚시 인구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낚시에서 먹는 재미가 차지하는 비중이 90%라는 꾼들의 주장도 이치에 닿는다.
하물며 나처럼 한 술꾼들이야 두 나위가 없다 하겠다.
내가 지금까지 마신 대선 소주는 줄잡아 7만병. 이 중 5만병은 생선회 안주일시 분명한 터-.
맛도 맛이려니와 몸에도 좋아서 일게다.
술 잘 받기로는 생선회 안주요, 속 잘 풀리기로는 생선국 해장이 아니던가.
추위에 떨거나 모기에 시달리는 밤낚시 고생 끝에 아침 물때를 보고 나면 꾼들은
데꾼한 모습으로 펑퍼짐한 바위짬에 한데 어우러진다.
술판을 벌이기 위해서는 먼저 분위기를 잡는 일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박스’ 안에서 노래미.술벵이 등 잡어 몇 마리를 끄집어내면서도 손목에 힘이 빠진 듯 주춤거리기 일쑤다.
일단 회를 뜨고 저마다 갖고 온 밑반찬에 곁들여 두레 먹듯 뺑 둘러앉아 가득 부은 소주잔을 몇 순배 돌리고 나면
오가는 대화 속에 철학이 흐르고 정이 배인다.
다음부턴 ‘박스’에 손 넣고 빼는 작업의 속도도 빨라지고 손목에도 힘이 붙는다.
한 사람이 바닥 치 볼락을 끄집어내면 옆 사람은 뒤질세라 뼘치 감성돔이다.
‘코펠’ 뚜껑에 수북하게 쌓인 회 안주를 보고 급한 군침을 삼키면서도 먼저 꼭 입을 모으고 넘어가야 하는 두 마디는
"소림사 주방장 뺨치네!", "와! 왜식집에 가면 몇 10만원 어치다!"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재미를 수반할 수도 있는 또 한 가지 재미는 꾼들끼리의 낚시 얘기다.
내 집에는 꾼 들이 많이 찾아온다. 출조 계획, 포인트 문의, 씨알 굵은 볼락을‘쿨러’가득히 낚아와
평소 큰소리가 허풍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려는 친구들도 있다.
만나면 첫 마디부터 끝까지가 낚시 얘기로 열을 올린다.
"당신 친구들은 ‘니링가라’, ‘산닝가라’가 어떻고, ‘요리도리’는 달아야 하느니 떼 내야 하느니,
만나기만 하면 싸우듯 하니 도대체 그게 다 무슨 말인교?"
갓 결혼한 아내가 몇 번을 벼른 끝에 물어온 적도 있다.
다음은 첫 재미와 연결되는 것으로 다음 낚시 갈 궁리를 하는 생각 자체의 재미다.
마누라는 어떻게 꼬시고 출 조지는 어디로 잡고 팀은 누구와 짜야 하는지 등등….
하기야 낚시에는 재미만큼 어려움도 뒤따르기 마련, 그 중 제일 큰 어려움은 '일요과부'라는 아내의
끈질긴 불평을 잠재우기까지의 부단한 노력으로 '포기도 성취'라는 결론을 얻게 하기까지의 숨 막히는 과정이었다.
낚시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오묘하고 또 어려워지는 것.
어제를 되씹어 볼 수 있기도 하고 또 내일을 설계해 볼 수도 있었지만 망연히 그걸 못했던 회한이 꼬리 하는 한
나의 낚시 병은 이래저래 시난고난해지기만 한다.
이것도 글이라고 행여 바램이 있다면 꾼 아닌 독자가 이 글을 읽고서 허튼 소리 시험할 요량으로 시작한 낚시에
그만 흠뻑 빠져버려 어쩔 수 없는 꾼이 돼 버렸다는 소식을 들어보는 것이랄까.
낚시의 변은 저마다 꿰기 나름,
모두가 견강부회할 수밖에 없다는 손쉬운 변명거리가 있어 못난 글을 쓰고도 마음이 편타.
(1989년 낚시춘추 9월 호 게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