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붕사 칼럼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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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10:28:40, Hit : 3998, Vote :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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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수 20년만의 해후

글쓴이 : 만땅

낚시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반갑다.
특히 마음 맞는 꾼들 끼리 만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낚시터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반갑고 고맙고 존경스러웠던 이들이 있었던 반면
두렵고 미안하고 쑥스러운 만남도 더러는 있었다.
직장 생활 틈틈이 출 조 하는 주말 낚시터에서는 언제 나처럼 그 ‘포인트’에 웅크리고 있는
붙박이 낚시인을 만나는가 하면 20년 만에 만나는 우연한 해후도 있었다.

낚시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반가운 것은 낚시를 하든 않든 간에 낚시터를 찾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낚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동질성 때문이다.

처음 마주칠 때 말문은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열기 마련.
“좀 됩니까”로 시작, “언제 왔습니까” “어떤 미끼가 잘 듣습니까” 등이다.
먼저 온 낚시인 은 뒤이어 “어디서 왔습니까” “이곳에 자주 옵니까“ 정도로 화답한다.
이쯤 되면 아무리 서먹서먹한 사이라도 버성김은 사라지기 마련.
‘배낭’에 챙겨온 과일을 꺼내고 ‘버너’에 불을 지펴 라면을 끓인다.
바다낚시의 경우 능숙한 솜씨로 회를 뜨고 소주를 곁들여 점심을 함께 하고 나면 백년지기.
고향도 서로 묻고 재미 본 ‘포인트’ 정보도 이 때 교환된다.

1979년 추석 연휴.

당시 부산시내 경찰서 서장 직에 계시던 박 영길 목화 예식장 회장님과 나의 고향인 거제도로 볼락 낚시를 갔다.
“옛날 추석 때 영구 선착장에서 감성돔과 함께 볼락을 한 망태기씩 낚았다”며 평소 자랑 했기 때문.

“회사 업무가 바빠서 명절날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자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고향 부모님께는 전화로 미리 양해를 구해 놓은 터!
오후 늦게 출발하는 거제도 행 여객선을 타고 하청에 내려 七川島(칠천도)행 마지막 도선 편으로 선창에 닿은 시각은
어두워 질 무렵이었다.
도선에서 내리기 바쁘게 ‘포인트’로 내 달았고 급한 마음으로 낚시 대를 던졌다.
이날따라 그 많던 볼락은 피난을 갔는지 입을 다물었고 겨우 젖 볼락 너 댓 마리씩으로 초 저녁 물때를 마감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산 너머에서 휘영청 밝은 달이 고개를 내 밀었고 새끼 볼락 몇 마리를 썰고
주문 해온 유부 초밥을 꺼내 소주 판 을 벌였다.
“영감님 고기는 안 돼도 분위기 한번 조오타 아입니꺼”.
“임 마야 한 ‘쿨러’ 는 문제없다고 큰 소리 쳐 놓고 뭐(?) 볼락이 단식 투쟁을 하는 모양 같다고!”.

인적 없는 선착장. 콘크리트 바닥에 마주 앉아 두 사람이 소주 너 댓 병 을 비웠다.
한참 열을 올려 웃고 떠들었고 급기야는 ‘오동추야’도 합창했다.
중천에 뜬 추석 달은 대낮같이 밝았고, 백여m 떨어진 작은 선창에서 낚시하는 사람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연이어 물장구를 치며 볼락을 낚아 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후닥닥 일어섰고 한 달음에 작은 선창으로 갔다.
박 회장님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영감님 뭐 좀 됩니까”....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순간 심장의 고동이 멈췄고 입이 떡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야야 나는 멀리서 노래 소리 듣고 늬 놈 인줄 진작 알았다”
“회사 일이 바쁜데 용케 빠져 나왔네...” 하신다.

“아아 아닙니더, 저는 고마 내일 아침 일찍 아버님 어머님 찾아 뵈오려 했어예...”.

손바닥만큼씩 한 굵은 볼락을 거의 한 바구니나 낚으신 분은 바로 낼 모래가 팔순이신 아버님이셨다.
정신을 수습한 후 곰곰 생각해 보니 10여 년 전 추석날 감성돔과 함께 볼락을 타작했던 초행길은 아버님과 함께였다.

아버님도 때 마침 아들이 고향에 못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으신 터라 옛날 그 물 때 그 자리를 못 잊어 찾아오신 것이다.
황당하리만큼 난처해진 박 서장님 은 “ 바쁜 사람을 제가 억지로 데리고 왔습니다” 했고,
아버님은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저도 낚시꾼 아닙니까” 하시면서 껄껄 웃으셨다.

1969년 5월 5일.
이날은 내 생애 붕어를 제일 많이 낚은 날이다.
이 날 내가 ‘웅덩이 못’으로 이름 부친 지금의 사천시 사남면 병둔리 국도변 조그마한 연못에서 처음 만난 분은 朴씨라고 했다.
문학을 하신다는 朴씨는 서울에서 야당 생활을 하다 군사 정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고향에 내려 와 있다고 했다.
웅덩이 못 바로 옆 기와집이 자기 집이고 자기도 낚시를 좋아해 매일 낚시를 다닌다고 했다.

나는 마침 공휴일이라 평소 눈 여겨 봐 뒀던 도로 옆 ‘긴 못’ 저수지에 답사 겸 낚시를 하러 온 터.
이날 하필 긴 못은 수문 을 고치기 위해 물을 모두 빼낸 후여서 바싹 말라 있었다.
둑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3백여m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연못이 보여 그곳으로 갔다.
바로 웅덩이 못 이다. ‘

크기는 2천 평 남짓 낚시 가방을 내려놓고 준비해 온 밑밥을 듬뿍 뿌려 준 후 낚시대를 펴려니
50세 전후의 남자가 정자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친절하게 말을 건넨다.
朴씨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여기는 붕어 새끼 한 마리 없는 못이요 나도 낚시를 좋아해 한 마장쯤 떨어진 저기 저 ‘서택지‘에 매일 다니고 있소” 한다.
“진작 알려 줬으면 밑밥이라도 아꼈지” 속으로 혀를 끌 끌차면서
내친 김에 담궈 나 보고 안 물면 바로 일어설 요량으로 두 칸 대에 두 뼘 남짓 수심을 잿 다.
찌가 서지 않는다.
‘이렇게 수심이 얕은걸 보니 저분 말대로 붕어는 틀렸다’ 고 생각하며 대를 들어 올리는 순간
씽- 하며 덩치 큰 붕어가 빈 낚시를 물고 늘어진다.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고 하마터면 놀라 자빠질 뻔했다.
그 때부턴 떡밥을 매달아 던지기가 바빴고 정오부터 해질 무렵까지 두 칸짜리 1대로
대형 살림망이 목에 까지 차고 넘치도록 타작을 했다.
씨알도 한 뼘이 넘었고 월척과 준척도 섞여 나왔다.

나는 마치 귀신에게 홀려 기적을 보는 듯 했고 곁에 앉은 朴씨는 ‘우째 이런 일이 우째 이런 일이’를 연발하며
계속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렸다.
“朴선생님도 낚시 대 들고 오시죠”
“아니요 나야 집이 세 발짝도 안 되니 선생 가고 나면 하지요”
월척 1마리와 준척 2마리. 방짜 3마리만을 타월에 말아 가방에 넣은 후 나머지는 모두 살려 주고 일어섰다.

기똥찬 낚시터를 개척했다는 뿌듯함
‘꿰미에 곶감 빼 먹듯 잠깐 와서 하루에 열 마리씩 만 손맛을 봐야지’ 생각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며칠 지나 일요일. 아침을 먹은 후 두 칸 대 1대 만을 들고 오토바이로 20분 거리인 예의 그 웅덩이 못으로 갔다.
‘아니 이럴 수가, 아니 이럴 수가’.
아니 박 선생 표현처럼 ‘우찌 이런 일이 우째 이런 일이’다.
나는 피가 거꾸로 치솟는 분노와 함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절망감을 맛봐야 했다.

현장에는 봉고승합차 2대, 승용차 3대가 진입 도로를 메웠고 40여명의 낚시꾼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게 아닌가.
못 둑에는 온갖 쓰레기며 ‘카바이트’ 찌꺼기가 여기 저기 널 부러져 있었다.
朴씨는 망연자실, 넋을 잃은 채 그 정자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믿기 어려운 사연은 이러 저러했다.

그날 내가 일어서기 바쁘게 집으로 뛰어간 朴씨는 부인에게 보리쌀 한바가지를 푹 삶으라고 다그쳤다.
다음날 먼동이 트자마자 대를 담근 朴씨는 반나절 만에 큰 통(다라이) 2개에 붕어를 그득히 낚았다.
별다른 벌이가 없던 朴씨는 부인을 오후 버스 편으로 晋州 시장에 보내 낚은 붕어를 팔아 오게 했다.
때마침 지나던 낚시꾼 두 사람이 굵은 붕어들이 펄쩍 펄쩍 뒤틀림 질을 하는 큰 통 앞에 앉았다.
5마리에 100원. 몽땅 사겠다며 비나리치는 꾼들의 꾐에 빠진 순진한 부인은
“우리 남편 혼자서 잠깐 동안 낚은 것” 이라며 자랑삼아 자초지종을 얘기해 버린 것이다.

1989년 5월 5일.
三千浦 와룡 지에 4짜 5짜가 터졌다는 연락을 받고 초량 낚시회 회장이자 인쇄업을 크게 하는
李東珍 사장과 함께 밤낚시를 갔다.
밤새 허탕을 치고 李사장과 나는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옛날 그 웅덩이 못을 찾아보기로 했다.
차를 세우고 못 둑에 올라서려니 저 만치서 초로의 노인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20년 전 단 두 번밖에 서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었던 朴씨 그 분 이었고 朴씨도 첫 눈에 알아보고는
“아이고 윤 선생님 왜 그 동안 한 번도 안 찾아 왔십니꺼” 라며 원망하듯 한 눈길을 보낸다.
나는 “아이고 이 웬수 같은 朴선생님을 꼭 20년 만에 다시 뵙는 구려”했다.

그 동안 朴씨는 큰 기와집 내부를 모두 현대식으로 개량했고 시골에서는 드물게 손녀가 치는 ‘피아노’도 들여놓는 등
없는 것 없이 풍족하게 살고 있었다.
넓은 토지에 특용 작물을 재배했고 아들들도 정부 고위직에 있는 등 남부러울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20년을 하루 같이 윤 선생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 마음 편안한 날이 없었노라 고도 했다.
그때부터 朴씨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정자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는 버릇이 생겼고 웅덩이 못의 지킴이 가 됐다는 것.

꼭 20년만의 그 날 그 웅덩이는 바짝 말라 있어 서운했으나 朴씨가 권하는 막걸리 맛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만큼 구수하고 향기로웠다.

(1995. 9)

나무꾼 (2008-03-24 13:36:54)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낚시꾼들의 행토는 예나 지금이나 똑 같지만,
낚시인의 마음은 20년이 지난후에도 여전히 변치 않는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건강이 허락하시면 자주자주 글 올려주시면 선배님 뵙는 즐거움이 크지 싶습니다.

애담 (2008-03-24 14:48:33)

아부지 !!! 여서 뭐합니꺼 ? .....
하지만 늘상 대답 대신 헐헐헐 아니던가요 ???

멋쩍은 모습이 선합니다. 흐흐흐

달 그림자 (2008-03-24 15:18:48)

아직은 젊어서 그런지 깊이있는 글을
다 못해아리는것 같읍니다만
잘읽었읍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겨울바다 (2008-03-25 08:16:49)

멋집니다...가슴이 찡 하니...감동이 옵니다..

선배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낚시의 멋을 느끼시길^^

푸른솔 (2008-03-25 09:30:39)

선배남의 경험과 추억은 늘 부럽기만 합니다.
예전처럼 많은 손맛은 볼수가 없지만 글을 보면서
제가 손맛을 보든듯 흥분이 됩니다.
늘 건강하시길.....

새벽물안개 (2008-03-25 20:53:22)

낚시터의 정감이 듬뿍담긴글 잘 읽었습니다...

칼붕어 (2008-03-27 09:42:58)

단편 소설 같은 ..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사다리 (2008-03-27 21:00:00)

잘 읽었습니다-- 초량낚시회 !! 참 아련합니다

송애 (2008-03-29 11:38:19)

잘 지내시지예....
웬수같은 그분 만나니 그래도 반갑지예.^^*

가락 (2008-03-31 20:31:51)

정갈한 구성이 찌올림 같이 상쾌합니다.
情과 인간愛가 넘치는 글을 보게되어
감사합니다.

반딧불 (2008-04-06 12:35:41)

가슴 뭉글한 글 감동있게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감동적인 옛 추억 한번씩 올려주세요.

노랭이 (2008-07-15 19:43:58)

붕어낚시의역사같은이야기 잘들었습니다.

에피타프 (2014-12-10 19:57:40)

읽으면 읽어볼 수록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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