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붕사 칼럼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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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0 00:37:23, Hit : 3714, Vote :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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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남편 악쓰는 아내 (Ⅳ)

글쓴이 : 만땅

상당 기간이 지난 후 효과는 엉뚱한 데서 나타났다.
지극히 우연한 기회, 그것도 술에 만취돼 엉겁결에 시도.
인격이고 체면이고 를 모두 팽개쳐 버린 극약 처방이 기적 같은 결실을 일궈 낸 것.

방학이라 집에 와 계실 매형도 뵈올 겸 단두남매, 한 분밖에 없는 누님 집을 찾았다.
연일 망년회가 이어 지던 때라 매형도 나도 초저녁부터 어지간히 취해 있었지만
모처럼 만난 처남 매부 지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
양주 한 병을 주거니 받거니 모두 비우고 "인삼주 가져와, 매실주 가져와" 하며 혀 꼬부라진 소리를 차례로 질러 댈 때다.
곁에서 묵묵히 대구포를 찢고 계시던 누님이 불쑥 한마디.
"야야, 니 너거 마누라 속 좀 대강 썩혀라, 올케가 울면서 이제니 하고는 같이 못 살겠다 카더라."
순간 손에 든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고 '이제야 말로 종말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여편네가 손위 시누이에게
집안 일을 까바치고 끝내는 이혼을 들먹이다니…'
내 몸과 마음은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쳐지는 것 같은 절망감으로 쪼그라들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영영 낚싯대를 꺾어야 하고 평생 기를 펴고 살기란 어렵게 된다'
순간 새로운 오기가 솟는다.
낚시로 단련된 신체와 용기는 이보다 몇십 배 더한 어려움도 헤칠 수 있게 했고.
몸에 배인 직업의식은 남다른 위기관리 능력을 터득케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퍼뜩 '여자 눈물만 눈물인가'란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이른바 '적반하장, 장계취계'의 모둠 전술.

곁에 앉은 누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매형의 무릎을 얼싸 안는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엉 엉" 소리 내 울어대기 시작.
넋 나간 놈처럼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기도 하고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고 있다.
" 형님, 내 인생은 이제 끝인 기라요. 새벽 5시에 출근, 밤 12시에 귀가해야 하는 이 더러운 월급쟁이도 신물이 나고요 흑 흑."
"여편네 자식들 모두 보기 싫다 카지요. 누나까지 여편네 편을 드니 내겐 살아야 할 명분도 의미도 깡그리
사라져 버린 거라 예. 흐 흐 흑…"
"형님요 내가 언제 외도를 합디까 노름을 즐깁디까. 기껏 골머리 좀 식힐 겸 쉬는 날 잠시 낚시하는 걸 가지고
꼭 무슨 천벌 받을 죄라도 지은 놈 취급하니 이게 말이 됩니까. 형님 판단 좀 해 보이소. 어 어 엉. 흐 흐 흑…"
"이혼! 이혼! 좋다 이거라요. 나는요, 팍 이혼하고 무인도로 가서 혼자 살끼라요. 어 어 엉. 흐 흐흑 흑흑…."

이 기막힌 꼴을 지켜보는 누님의 마음 갈등이 귓전에 와 닿는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 거들었다가 난처해진 누나,
'하나밖에 없는 나이 50줄의 동생을 저리도 섧게 만들었다'는 회한 때문에 가슴이 저려서인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나는 속으로 '이제 주사위는 던져 졌다. 결과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했다.

다음날 당장 시누이는 올케를 불렀을 거고, 남달리 의초로운 두 사람은 만나자 마자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울었을 터.
"올케야 니가 다 큰 니 서방 버릇 고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겠다. 서방 하는 짓은 도둑질도 못 말린다 안카더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방 하는 짓이 괘씸하고 섭섭하다고 마음에 계속 담아두면 올케니 몸과 마음만 상하고
가리 늦게 서방도 이자뿌리겠더라."
"고마 니가 맘 크게 먹고 포기 하모 안 되겠냐?"
보지 않아도 진행 과정은 이쯤 됐을 거고 결과는 예감으로 점칠 수 있었다.

"제주도 낚시"라는 감격적인 제안을 아내로부터 받은 것은 내가 매형 집에서 '울보 놀음'을 한지 사흘 후!
비록 기운은 빠졌지만 은근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동조했으나 어깨에는 낚시 가방 대신 카메라를 메고 갔다.
가족 동반 2박3일 제주도 일주 여행은 어찌 보면 낚시 보다 훨씬 더 즐거웠는지 모른다.
제주 특산 자리돔 회, 옥돔 구이, 특미 해물 탕도 가족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호텔 옆 가요방을 독차지 밤새 목청껏 노래도 불렀다. 한라산, 일출봉 해돋이도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여보, 제가 잘 못 했어 예…"
"서귀포 방파제에는 낚시하는 남편을 뒤 바리지 해 주는 부인들도 많던데....."
"아 아이다. 내가 못난 놈이지 당신이 뭘 뭘 잘못했다고 이 카노"
아내는 느닷없이 눈물을 쏟으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당황해 하면서도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오금을 박는 한마디는 빠뜨릴 수 없는 것.
"그러나 여보야, 낚시는 내 팔잔 걸 우짜노…"

결혼 스무 해가 되던 새해 첫 날.
제주 민속박물관 돌하루방 앞 뜰악에는 하얀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여가고 있었다.

- 미친 남편 악쓰는 아내 끝 -

마구조아 (2007-09-20 00:41:14)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죠?
얼른 담편 올려주세요

애담 (2007-09-20 08:32:08)

마일리지 좀 안남았읍니까 ??? ㅎㅎㅎ ( 비행기값이 워낙 비싸....)

글 잘 읽었읍니다.
10월중 강릉쪽 여행하실 계획은 없읍니까 ??? (무료 쿠폰 하나 드리겠읍니다.)

(2007-09-20 08:58:41)

어렵게 써 주신 글을 보시고 난 후, 감사의 답글을 달아주시면 글 써주신 선배님들도 힘이나실테고
이 칼럼코너도 빨리 활성화될 수 있을겁니다.
이는 인터넷사이트 생존의 기본이며, 살아있는 커뮤니티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경붕사는 여러 회원님들이 함께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그렇게 해 주실거지예? ^^
만땅선배님 좋을 글 고맙습니다. 그리고 모든 회원님들 늘 고맙습니다.

수변정담 (2007-09-20 09:27:31)

만땅선배님! 실록 단편소설의 압권입니다.잘읽었습니다.
낚시와 바둑을 살면서 지속할때의 즐거움만큼
지속키위한 어려움이 따릅띠다.

무뚝대마왕 (2007-09-20 09:33:16)

짝짝짝~~ 선배님 글 너무 잘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전 아직 미혼이라 대략 짐작만 하지만 마누라랑 같이 낚시다닐수는 정말 없는것일까 ㅠㅠ
마누라랑 오붓하게 소류지 한켠에서 반딧불 벗삼아 오손도손 이야기 하며 밤을 지새울수는 없는것일까? 정말 없나요 ㅠㅠ

뽀빠이 (2007-09-20 09:39:41)

선배님 잘읽고 갑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제주민속 방박물관 앞뜨락에 그 돌하루방이 건재 해 있습니다.

송애 (2007-09-20 10:48:33)

글을 읽어면서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선배님 처음 접해보는 단어도 제법 있네예..
체크해서 찾아봐야겠습니다.
대단하신 선배님 이십니다.^^*
늘~건강 하십시요

참붕어 (2007-09-20 11:22:29)

정말로 실감나는 한바탕의 인생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많은 시간동안 그야말로 투쟁아닌 투쟁을 통해서 얻어내야 하는 것이 이닐른지요~!

세한도 (2007-09-20 12:42:23)

집사람 왈 "또 가나?"
잔소리를 늘어 놓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10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낚시 갑니다.
그때는 이것 저것 챙겨줍니다. 부자간에 시간 보내라고....
낚시해서 좋고, 아들이랑 이야기 많이 해서 좋고.
선배님 해피엔딩이었군요^^
글읽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완초붕어 (2007-09-20 12:43:57)

너무 재미있고 즐겁게 글 읽었습니다.
얼마 살진 않았지만 사람냄새가 물씬 올라오는 글입니다.

터푸가이 (2007-09-20 18:56:14)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찌한마디 (2007-09-21 10:51:56)

감사합니다...자주 연재 부탁드립니다...

새벽물안개 (2007-09-21 12:56:56)

선배님 감사합니다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결국 사모님의 양보?(배려?) 덕분에 해피엔딩이 되는군요...
그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선배님의 끝없는 낚시에대한 사랑과열정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 연재가 계속되면 한편의 수필과도 같은 조행기도 들을수 있겠군요
감사합니다 ~~~~

민아찌 (2007-09-21 14:44:10)

선배님의 글..감동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하고재비 (2007-09-21 15:27:10)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오륙도 (2007-09-24 08:57:34)

즐겁게 보았습니다.
선배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같이 물가나드리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닥사랑 (2007-09-26 16:45:17)

감사 하게 잘읽었 읍니다
ㅎㅎㅎ 함 써먹어 봐야 겠죠?

안빈낙도 (2007-09-27 10:04:44)

팔잔걸 우짜노....선배님, 저도 가끔씩 써먹는 대목이랍니다...ㅋㅋ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노을빛 (2007-09-28 10:23:29)

정말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

나무꾼 (2007-09-28 15:04:23)

모든게 피와살이 되는것 같습니다.^^
좋은글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큰가마우지 (2008-03-17 00:22:17)

낚시에 대한 열정과 신념이 묻어 나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는 기회 있을시에 재미있는 글 게재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쥰 (2008-08-19 14:25:59)

밀린 숙제하듯 ‘경붕사칼럼’을 보던 중 ‘만땅’선배님의 ‘미친 남편 악쓰는 아내’를 읽고
‘만땅’선배님의 낚시와 아내를 오래도록,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 생소하지만 아름다운 단어들이 있어 사전으로 찾아 해석하여 드리오니 못읽어
보신 분들께는 재밋게 읽으시는데 조금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1편
---------남편의 낚시 편력에 언걸먹은 아내의 살천스런 모습은
갖가지 행티로 나타난다.--------------
언걸먹은: 남의 일로 해를 입어 골탕을 먹은
살천스런: 쌀쌀하고 매서운
행티 : 횡짜를 부리는 버릇(횡자: 제멋대로 방자함)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부턴 분한 마음은 삭여야 하고 다음의 안전 출 조를 위해선 몽딸 수밖에 없다. 도리어 세탁할 낚시 속옷 주머니에 만 원짜리 몇 장을 라이터에 말아 넣어 두는 등으로 엉너리 처야 한다.------------
몽딸: 몽 따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척하다.
엉너리: 남의 환심을 사려고 어벌쩡하게 서두르는 짓

--------맞대매를 않고도 딱장받듯 '똑' 부러지게 굴복시킬 수 있는 구멍 수는 없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여줄가리에 매달려 여러 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맞대매: 단 두사람이 마지막으로 우열을 겨루는 대매(대매:승부를 마지막으로 결정하는일
딱장 : 도둑을 때려가며 그 죄를 불게 하다.
여줄가리:중요한 일에 딸린 중요하지 않은 일

2편
-------------씨부렁 거리는 나의 언구럭질에는----
언구럭질:사특하고 교묘한말로 남의 속심을 떠보는등 남을 농락하는 태도

3편
----------기발한 영감이 떠올라 깨단해 졌다.-------------
깨단해졌다.:오래 생각되지 않던것을 어떤 실마리로 인하여 환하게 깨닿다.

------------미리 허방다리를 놓고------------
허방다리:함정(허방-움푹 팬 땅)

----------------진둥한둥 꿈같은 며칠을 보내고------------
진둥한둥:매우 바빠서 겨를 없이 지내는 모양

------------뒤따라 다니며 마구발방을 쏘아 댄다.---------
마구발방:법도없이 함부로 하는 언행

-----------생게망게 해서인지-----------
생게망게하다:생스럽고 터무니가 없어 생각이 도무지 닿지 않다.

4편
------------집안 일을 까바치고 끝내는 이혼을 들먹이다니-------------
까바치다:비밀을 속속들이 드러내어 일러주다.

------이른바 ‘적반하장 장계취계’의 모둠 전술
장계취계:저편의 계략을 미리 알고 이를 이용하는 계교

------------남 달리 의초로운 두 사람은----------
의초로운:동기간에 우애가 좋은

만땅 (2008-08-22 06:51:29)

오랜만에 칼럼 드려다 봤습니다.
쥰 님 마음 써 주신 성의있는 댓글 보고 고맙단 마음 전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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