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만땅
기상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나다.
대자연 앞에서는 인간이 한없이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인 까닭이다.
따라서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낚시만큼 날씨에 많이 좌우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몇몇 날을 벼르고 벼른 끝에 큰 맘 먹고 나선 출조인 데도 바람 불어 망치고 추위에 떨고 더워서 고생하는 등
낚시인들은 이처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을 많이도 지녔으리라.
내 어릴 적 아버님은 매일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셨고 일어나시자 마자 맨 먼저 하늘부터 쳐다보셨다.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바다를 바라보시며 물결도 재고 바람과 구름을 만져보시곤 했다.
이때쯤엔 으레 집으로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있었다.
모두가 어부들인 새벽 손님이 찾아오는 횟수가 겹쳐지는 동안 차차 알게 된 일이지만
이들은 아버님께 바다 기상을 물으러 오신 것이다.
"오늘은 오후에 돌풍이 불 것 같다", "먼 바다에는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등의 대화를 종종 들었고
그 때 마다 어김없이 오후엔 비바람이 몰아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미군의 B29 폭격기가 앞 바다를 지나는 일본 군함과 상선에 폭탄을 퍼붓고 기관총을 마구 쏘아대던 시절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습경보가 내리면 온 가족들이 주먹밥을 싸 들고 마을 뒤 반공호에 몸을 숨기곤 했다.
아버님과 새벽 손님들과의 대화는 해방 이후에도 꽤 오랜 동안 계속 됐다.
당시 어업조합(지금의 수협)장으로 계셨던 아버님은 왜정때 수산전문학교에 다니시면서 해양기상학을 공부하신 것 같았다.
또한 일제 때 보기 힘들었던 나무 상자에 스피커를 그물 천으로 가려놓은 구식 ‘라디오’,
해방 후 귀한 물건이던 덩치 큰 가방처럼 생겼던 미제 ‘제니스 라디오’를 통해 일기 예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기상을 미리 알 수 있는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경우 자주 출조일지를 쓰면서 ‘메모’해둔 기상변화가 경험이 돼 조행길에 많은 도움이 됐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모르는 것 보다는 알고 보면 특히 유익한 게 상식이다. 극히 상식적인 상식이지만 기상의 경우 더욱 그렇다.
요즘 에는 TV나 ‘라디오’에서 시시각각 일기예보를 들려주고 그 적중율도 매우 높아졌다.
나는 TV 나 신문에 나오는 일기도를 눈여겨보면서 어제오늘 작년 올해 등으로 비교해 보고
또 나름대로 분석도 하면서 일기 감각을 익혀왔다.
맑고 흐리고 비 오고 물결이 높고 낮고 바람이 세차고 약한 것 등기상은 대부분 기온과 기압의 변화와 이동에서 비롯된다.
공기가 있는 곳에는 기압이 존재한다. 공기 밀도가 높을수록 기압이 높고 희박할수록 기압이 낮은 것이다.
기압이란 공기 즉 대기의 압력이다.
공기의 밀도가 높아 무거워진 것, 그래서 지상을 누르는 무게가 큰 것이 고기압이고 가벼운 것이 저기압이다.
무거운 고기압이 지상에 내려오면서 공기의 압력과 지상의 복사열로 더워지고
더워진 공기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상하운동’을 한다,
더운 공기는 찬 공기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고 더운 공기가 있던 빈자리는 또 다시 차가운 공기로 채워지는 것이
공기의 ‘수평운동’이다.
대부분 공기의 상하운동 규모에 따라 비가 내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요인이 되고
수평운동의 속도나 규모에 따라 바람이 불고 태풍이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에 장마가 끝날 무렵이면 미국 동부 해안에는 “호네이도”라는 회오리 돌풍이 분다.
자동차가 하늘로 솟구치고 바닷물이 물기둥이 되어 하늘로 빨려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아주 좁은 범위의 강한 저기압이 규칙적으로 한꺼번에 상승함으로써 비롯된다.
나도 어릴 적 이같은 회오리 돌풍으로 많은 비와 함께 학교 운동장에 미꾸라지가 퍼드덕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웬만한 '저수지의 물이 고기와 함께 몽땅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는 기록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이런 날 낚시를 떠나는 사람이야 있을까만 돌변하는 기상 이변으로 많은 낚시인 들이 봉변을 당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렇다면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과학적인 측정 장비나 기상정보를 전달 할 수 있는 매체조차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상 상황을 예측하고 또 대처했을까.
짐작 컨 데는 구름이나 바람 등의 이동 속도나 방향을 민감하게 관찰했을 것이고
동식물의 생태나 활동 변화를 눈여겨보면서 기상과 천재지변을 어느 정도 감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알고 보면 예로부터 구전되는 기상상식 또한 나름대로 과학적인 근거도 있고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비록 주먹구구식 이긴 했겠지만 나름대로의 경험이나 통계에 근거했었기 때문이리라.
어촌에 가면 '시마 바람 끝에 어장 터진다'는 말이 있다.
동남풍이 불 때가 아니고 불고 나면 수온이 올라가 고기가 잘 잡힌다는 의미다.
이처럼 풍향이 조과나 어획에 결정적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수온은 풍향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이다. 동남풍이 처음 불어올 때는 수온이 차고 오래 불고 난 후에는 수온이 따뜻하다.
반대로 북서풍이 처음 불어 올 때는 수온이 높고 오래 불고 난 후에는 수온이 내려간다.
따뜻한 공기가 오래 머물면 그 곳의 육지나 바다와 호수의 수온은 올라가고 그곳에는 뒤 이어 찬 공기가 들어오게 된다.
‘공기의 수평 이동이 바람이고 공기는 더운 곳에서 찬 곳,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른 다’ 는 원칙만 알면
바람도 예측이 가능한 것이고 수온도 미리 점칠 수 있다.
기온은 그렇다 치고 기압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이를 헤아리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사장실 분위기가 지금 저기압이다”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면 쉬울 수도 있다고 본다.
TV, ‘라디오’나 신문의 일기도를 매일 매일 참고하면서 감각적인 경험을 쌓는 것이다.
오랜 경험을 쌓다 보면 언젠가는 일기도를 보지 않고도 공기의 밀도 즉 기압 상태를 느끼게 된다.
다소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옥외가 더욱 정확) 자세히 관찰해 보면
커피 잔 속의 거품이 컵의 중앙으로 모이면 기압이 높기 때문이고 컵의 가장자리로 흩어지면 기압이 낮다고 봐도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저수지에 떠다니는 물거품의 흐름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고기압에서는 무거운 공기가 수면을 누르게 돼 컵이나 호수의 중심부가 낮아지며
따라서 거품은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일기도에서 눈 여겨 봐야할 점은 등압선이 성글게 형성돼 있으면 바람이 약하게 불지만
조밀할수록 세찬 바람이 불게 된다는 점이다.
낚시를 다니다 보면 더위와 추위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추위는 북쪽에 위치한 대륙성 고기압의 세력이 커 한, 냉 전선이 남쪽으로 이동해 올 때 나타난다.
반대로 더운 것은 남쪽에 형성된 열대성 저기압 세력이 크기 때문이다.
더위는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지만 추위는 상상 이상의 고통을 안겨 준다.
특히 밤낚시, 그것도 산간 저수지 밤낚시에서는 여름에도 초겨울 이상의 추위를 느낄 때가 많다.
평지에서는 별다른 추위를 느끼지 못하지만 산중의 추위는 평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높은 곳 에 올라갈수록 공기가 희박해 지기 때문에 해발 100m를 오를 때 마다 기온은
평지보다 섭씨 1도씩 낮아지고 교외가 도심보다 3도 가량 낮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해발 500m의 산중 온도는 도심지보다 8도 가량 낮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다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는 실제온도 보다 훨씬 떨어지게 된다.
통상 초속 1m의 바람이 불면 체감 온도는 1도씩 낮아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만약 도심지의 기온이 섭씨 10도일 때 초속 10m의 바람이 부는 해발 500m의 산간 저수지에 앉아 있다고 치면
체감 온도는 영하 8도의 추위를 느끼게 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추위 더위 홍수와 태풍 등 천재지변에 엄청난 재산과 인명 손상을 당한다.
하지만 수많은 동물과 미물, 심지어는 식물까지도 천재지변과 기상 변화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중 호우가 예상되는 해에는 새들이 둥지를 높게 짓고 꿀벌들은 알집의 새끼들을 미리 다른 곳으로 옮긴다.
농민들은 까치들이 집을 낮게 짓는 것을 보며 올해는 대형태풍 등 큰바람이 자주 불어 닥칠 것을 예상한다.
혹한이 닥치는 해에는 벌들이 출입구를 좁게 막고 나무들도 껍질을 두텁게 하거나 열매들의 보늬가 두터워진다.
개의 후각은 사람의 100만 배나 되고 10.000가지 물질의 서로 다른 냄새와 농도를 구별해 낸다.
뱀은 1.000분지 1도의 온도 변화를 감지하고 바퀴벌레는 백지 한 장을 마루에 떨어뜨리는 진동도 느낄 수 있다
박쥐는 현대 ‘레이더’도 따르지 못하는 초음파 탐지 기능으로 캄캄한 그믐밤에도 자유롭게 날고 먹이를 사냥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따라서 창조하는 능력은 발달돼 있다.
반면 동물들은 적응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 때문에 고도의 감각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어선에서 수많은 쥐 떼들이 로프를 타고 육지로 내려오는 것을 본 선장이 출 어를 포기,
이틀 후에 닥친 「사라」호 태풍을 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낚시 가서 무료 할 때 동 ,식물이나 곤충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는 습관을 갖는것도 재미있고
유익한 상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될는지 모른다.
제비나 종달새, 잠자리가 낮게 날면 왜 비가 올까.
비가 오기 전 대기층은 불안정하다, 각종 벌레나 곤충들은 비 오기 전 먹이 활동이 분주해 진다.
맑은 날 높이 날기를 좋아하는 제비나 잠자리들도 본능적으로 낮게 날며 먹이를 잡는다고 볼 수 있겠다.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면 다음날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분다.
이는 비 오기 전 현상인 찬 기류와 뜨거운 기류의 충돌로 대기가 불안정 해 진다.
이 불안정한 대기층을 투과해 시야로 들어오는 별빛이 흔들리는 것이다.
달무리 해 무리가 생기면 비가 오는 이유는 저기압이 다가올 때 나타나는 높은 구름이
해나 달의 주위를 덮기 때문에 오래지 않아 비가 온다.
이 밖에도 옛날부터 구전되는 상황판별 속담은 많다.
변소나 하수구의 냄새가 유난히 심하면 비가 온다.
새벽 일찍 강이나 호수에서 김이 무럭무럭 오르면 가뭄의 징조다.
동풍이 불면 날씨가 궂을 징조, 비 올 때 서풍이 불면 개일 조짐이다.
먼 곳의 소리가 가깝게 들리고 먼 산이 가깝게 보이면 비, 아침 무지개는 비, 저녁 무지개는 맑음 등등... .
나이든 농부가 어부이던 동생의 아들인 조카를 보고 묻는다.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 가셨는지 아느냐”
“예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 돌아 가셨습니다”.
“그런데도 너는 여전히 위험한 고기잡이를 계속할 생각이냐”
“예 할아버지께서는 육지에서 농사를 지으시다 병으로 돌아 가셨는데도 숙부님은 그대로 농사를 짓고 계시 지 않습니까”.
바다는 걸핏하면 배를 뒤집어 인명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바다 가 있기에 배를 띄울 수 있고
그래서 인간에게 풍요를 안겨 주는 게 아닐까.
바다가 있고 강과 호수가 있기에 그래도 낚시인은 무작정 낚시 대를 메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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