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고기 맛과 선원들의 애환
글쓴이 : 만땅
‘고래’하면 장생포, 장생포 하면 고래를 연상한다.
그만큼 고래 이바구는 장생포와 따로 떼 놓을 수 없다.
장생포 항은 우리나라 고래잡이 역사와 함께 울고 웃고 발전 해 왔기 때문이다.
장생포 항이 고래잡이 기지로 이용되기 시작 한 1899년, 그때만 해도 장생포는 20여 호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한적한 갯마을이었다.
썰 물때면 아낙들은 마을 앞 갯바닥을 뒤져 조개를 줍고 남정네들은 그물을 쳐 도미･숭어･ 도다리 등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 왔다.
「러시아」인들에 의해 고래잡이의 거센 물결이 해일처럼 밀어닥치자 장생포 항은 하루아침에 흥청거리는 포구로 돌변한 것.
지금은 8백44세대, 2천8백92명의 주민들이 있지만 지난 86년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된 이후부터 장생포 항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업도시의 한 귀퉁이에 위치, 조선소도 있고 냉동 공장 식품공장 ‘탱크터미널’ 등 몇몇 굵직굵직한 공장이 들어서 있지만 부산한 해변엔 아직도 고래잡이 추억을 떨쳐버리지 못한 고래 배 사나이들의 긴 한숨이 짙게 깔려 있는 듯 하다.
예전까지만 해도 만선을 알리는 포경선의 힘찬 뱃고동 소리가 포구 가득히 울려 퍼지고 장생포 항에 고래 파시가 서면 고래잡이 어부들은 물론 온 마을 주민들은 너나없이 신바람이 났다.
고래를 해부해 널어두면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바구니를 들고 와 게염내지 않고 먹을 만큼씩만 고기를 담아가곤 했으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때는 "장생포에 가면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소문날 만큼 흥청거렸고 그만큼 인심도 후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고래 배 포수 할래 울산 군수 할래"물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고래 배 포수 하겠다 고 대답했다는 것.
당시 고급 공무원 봉급이 일본돈 30원이 채 못 될 때 포수 월급은 70원이 넘었고 하급 선원도 40원 이상씩 받았으며 만선이라도 몇 차례 하면 포수, 선장 몫은 100원이 넘을 때가 대부분이었다고….
한창 고래가 많이 잡힐 때는 하루저녁 10원(당시 논 한 마지기 값)이면 요정에서 기생들을 몽땅 불러놓고 밤새껏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었다.
해방 전에는 일본 포경선 말고도 중국 등 외국배가 자주 드나들기도 해 장생포엔 10여 명씩의 기생을 둔 한일관(韓一館)등 큰 요정이 3개나 있었고 해안 통엔 선술집 대포 집이 즐비했었다고….
"아무리 콧대가 센 ‘울산 큰 애기’ 들도 고래 배 총각 선원에겐 맥을 못 췄다"며 어깨를 으스대던 포경선 사나이들의 낭만도 이제는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추억거리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해질녘이면 그때 그 시절을 못 잊어 자신이 잡은 범고래 이빨로 만든 ‘파이프’를 물고 장생포 해변을 서성이곤 한다는 김 하진 씨(金 河鎭. 65세 .전 진영 호 포수).
17세 때 일본 국립 해원 학교를 졸업, 고래 배와 인연을 맺어 2등 갑판원으로 일 하면서 50원 이상씩의 월급을 받았고 27세에 선장으로 승진했으며 20년 만인 37세에는 당시로선 제일 젊은 포수가 됐다고 자랑한다.
평생 고래 배를 타도 포수는 고사하고 조타수 감투 하나도 따내기 어렵던 시절이다.
게다가 포수가 되려면 종류별 고래들의 갖가지 생태와 습성도 훤히 꿰뚫어야 하고 조류의 변화에 따른 고래들의 회유 해역 파악 등 고래사냥의 성패와 직결되는 갖가지 전문 지식을 고루 갗춰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포수의 위치는 어렵고도 중요했다 는 것이다.
김 포수는 한때 인도양(印度洋), 남빙양(南氷洋)을 누비며 고래를 쫓던 시절, 6개월 1항차에 1천 원을 벌어 항구마다 일본 여성 등 애인을 두고 다녔다고 자랑한다.
어쩌면 금세기엔 다시 들어보기 어려운 고래 배 사나이들의 무용담일지도 모른다.
10여 년 전 장생포에서 만났던 제1청구 호(靑丘號) 해부 장 윤 명출 씨(尹 命出. 당시 72세)는 "한창 돈을 잘 벌 땐 일본에 상륙하는 길로 애인을 정해 대판(大阪)에다 100원 짜리 대궐 같은 집을 사주기도 했으나 그 많은 돈을 어디에 다 써 버렸는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같은 고래 배 사나이들의 낭비벽 때문일까, 더러는 여투기라도 해 남부럽지 않은 여생을 보내는 선원들도 있지만 대부분 살아가기 위한 뾰족 수를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잠깐만이라도 옛날의 영화를 되찾고 싶어 하는 고래 배 사나이들의 집념은 꼭 돈 때문만은 아닌 성싶다.
끝없는 망망대해에서 엄청난 덩치의 고래를 잡기 위해 벌이는 한판의 승부가 사나이들의 모험과 도전, 투쟁과 승리라는 서부 적인 성취감을 안겨주기 때문이기 도 하지만 잡은 고래 고기의 향긋한 맛을 못 잊는 때문이기도 하다.
부위에 따라 12가지 맛을 낸다는 고래 고기는 먹는 방법이나 느끼기에 따라서는 각각 독 특 한 맛이 스무 가지도 더 된다는 게 고래 고기 음식점 주인들의 말.
한 때는 장생포 항 해안 통에 50여 개소의 음식점이 있었고 고래 고기 전문 음식점만도 많을 때 41개소나 됐지만 지금은 대여섯 곳으로 줄어들었다.
장생포에서 잡힌 고래 중 머드러기는 일본으로 수출, 연간 4백만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기 도 했다.
반면 고래 고기가 정력에 좋다는, 남자가 소주 등 독한 술에 곁들여 먹으면 먹기는 남자가 먹지만 좋기는 특히 여자에게 더 좋다는 경험자들의 다분히 허풍 섞인 주장들이 보편화 돼 있던 터라 많은 양은 대부분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로 팔려 나갔다.
그래도 장생포에는 갓 잡은 고래 고기 요리 맛을 못 잊어 전국에서 찾아드는 미식가들을 맞는 특징 있는 음식점들이 번창했고 지금도 그중 몇 곳이 남아 있다.
장생포에서 맨 처음 고래 고기 전문 음식점이 문을 연 때는 지난 1960년부터.
「할매 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김 수씨(81년 75세로 작고)가 간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 54살 때 첫 장사를 시작, 엄청난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지금도 울산시가 향토 음식점으로 지정한 ‘왕고래 집’ 등이 맥을 이어 가면서 속소그레한 재미를 본다고….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 고기",6.25이후 울산 지역에서 시작돼 한때 전국적으로 퍼졌던 시대적 유행어다.
서울 사람들의 속마음은 ‘다마내기’(양파) 속껍질처럼 벗 겨도 벗겨도 깊은 딴 속이 따로 있듯 맛좋은 고래 고기 맛은 부위 따라 조리 방법에 따라 맛이 다르고 먹을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는 뜻.
"먹새 좋은 사람 12명과 고래의 맛 좋은 부위 열두 쪽을 놓고 각기 어느 살이 제일 맛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하루 종일 싸개판을 벌이기 십상, 결론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어느 해부장의 주장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고래 고기 맛의 백미는 입술 부위. 다음이 꼬리, 배 폭, 목덜미 순으로 친다.
그러나 이 또한 육회 좋아하는 사람 다르고 수육, 고래 생 회, 고래 ‘스테이크’ 등 조리 방법이나 양념에 따라 맛이 틀리고 처음 먹을 때 다르고 두 번 세 번 먹을 때 또한 다르다.
수육 좋아하는 사람만두고 보드라도 고래 아기집이나 대창, 낭심 등에서 제일 기똥찬 맛이 나온다고 제 각각 손사래를 쳐가며 서로의 주장을 굽히려 들지 않는다.
노루처럼 쓸개가 없는 짐승으로 알려진 고래는 또한 노루처럼 피가 응고되지 않아 해체할 때 모두 흘러 빠져버리기 때문에 피만 쓸모가 없다.
고래 고기는 고 단백질이며 장수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고래 기름은 마가린 등 식 용을 비롯, 윤활유, 의약품 원료, 화장품 원료, 세제 원료, 공업용 등에 두루 쓰여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많은 국가들이 치열한 수집 경쟁 을 벌이기도 했다.
육질과 영양소는 소, 염소 등과 비슷하다.
고래 고기 100g 중에는(괄호 안은 쇠고기) 열량 1백56cal(1백46), 단백질 20.6g(21), 지방질 7.5g(6.1), 비타민A 1천8백60IU-국제단위-(40), 비타민B1 0.09mg(0.06), 비타민B2 0.08mg(0), 칼슘 12mg(4)등 양질의 영양소가 골고루 함유돼 있으며 특히 비타민A와 칼슘 함량은 어느 육류와도 비교가 안 된다.
고래 고기야 말로 한 마디로 말해 맛도 영양가도 만점인 먹 거리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 배꼽 아래쪽과 꼬리 부위의 속살을 생회로 눈 집장에 찍어 먹거나 파, 마늘, 생강, 배 즙, 참기름 등 섞 박치 에 곁들여 육회로 버무려 먹었던 기억은 10년 지나 지금 그 생각만 해도 입안에 그득 군침이 돈다.
고래 고기는 불포화 지방산을 거의 함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삶아서 오래 보관해도 좀처럼 상하지 않지만 부위에 따라 소화 흡수율이 떨어지는 결점도 있다.
또한 섬유질 조직이 거칠어 화력 소통이 빠르기 때문에 오래 구우면 고기가 단단하거나 파삭파삭 해지기 쉬워 고래 고기는 짧은 시간, 단번에 구워내야 제 맛이 난다.
김 수 할머니 이후 「할매 집」을 이어 받았다는 이 수자(李 秀子․69세)할머니는 "내가 죽기 전에 다시 고래를 마음껏 잡을 수 있는 세상이 와 어부들이 신명에 겨워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꼭 한 번 더 봐야 할낀데…"하시며 끝내 목이 메었고 멀리 수평선을 응시하는 눈시울은 물기로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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